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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칼럼

조회 수 1158 추천 수 0 2012.03.13 09:05:06

무력감이 시위해 올 때

[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수도장로교회 담임목사/ 2012년 3월 2일/ 한국일보 칼럼]

 

성경공부 도중 교인들에게 물었다. “내 곁에 가장 가까이 있지만 내가 가장 어찌할 수 없는 건 뭘까요?” 그러자 대뜸 한 분이 답하기를, “마누라요!” 했다. 순간적으로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아마 그 웃음들 속에서 다들 ‘공감’의 냄새를 맡아서였을 거다. 적어도 남자들에게는.

 

내가 원하는 정답은 마누라나 남편이 아닌 ‘내 마음’이었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확실하게 내게 가까이 있는 존재다. 그것도 ‘내 곁’이 아닌 ‘내 안’에 있으며, 그것은 그 자리서 내 자신을 이리저리 송두리째 흔드는 아주 요상한 실체다.

 

그래서인지 마음은 온종일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오늘이면 오늘, 내일이면 내일, 매일 매 순간 나라는 존재를 계속 지켜보고 있다. 어쩔 때는 제발 좀 떠나주었으면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 눈을 부릅뜨고 나를 감시하는 게 바로 내 마음이다. 그래서 마음은 가장 가까이 있으나 가장 어찌할 수 없는 대상이다.

 

하지만 달리 보면, 어찌할 수 없는 내 마음을 다루어야 하는 자도 내 자신이다. 마음에 의해 난 다스려지고 있다는 것, 즉 내 마음은 나의 능동적 주체요 난 거기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 객체인 것도 사실이나, 그런 마음을 역으로 다스려야 하는 존재 역시 내 자신임도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마음과 나의 관계는 이런 묘한 역설의 변증법적 관계이다.

 

그런 점에서 마음을 잘 다스리는 자가 건강한 삶을 사는 자다. 사람은 가만 놔둬도 하루에 천당과 지옥 사이를 수십 번도 더 오간다. 마음속에서다. 행복감이 밀려오면 그때 내 안의 세계는 천국이다. 반면 불길한 생각들이 마음속에 번지기 시작하면 천국이던 그곳이 삽시간에 지옥으로 바뀐다. 그러기를 몇 차례 하다 보면 내 마음은 자동으로 롤러코스터를 탄다. 천당의 아름다움에서 지옥의 불덩이로, 지옥의 고통에서 천당의 안락함으로 오가는 롤러코스터다.

 

이 중 요사이 우리들 안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지옥의 마음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무력감이다. 없을 무(無)에 힘 력(力)이다. 한 마디로 힘이 확 빠지는 감정을 뜻한다. 그런데 이 무력감은 얼마나 힘이 센지, 글자 합성으로만 보면 힘이 없어야 맞는데 실제로는 이게 세력을 발휘하면 감당이 안 될 정도다.

 

특히 이 무력감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깊은 괴리가 보일 때 그 위력을 떨친다. 예술가나 작가들이 갖는 풍부한 상상력의 산물이 곧 자신들의 이상적 혼이 담긴 작품일 것이다. 그러나 그 작품세계와는 너무나도 딴판인 현실들을 경험하면 무력감이 찾아든다. 열심히 노력하면 내 꼬인 인생 펴질 날 올 거라고 믿었지만, 세상은 워낙 상대적이어서 그 절대적 노력과 상관없이 나를 여지없이 가난 대물림의 희생자로 만들어버린다. 이 역시 무력감의 현장이다.

 

신앙세계도 마찬가지다. 성경이 그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이상적 현실이다. 목회자의 경우 그림자 수준으로나마 이 세계를 꿈꾸며 일한다. 그러나 그도 교회라는 현실 속에서 그 이상과는 큰 차이가 나는 상황들을 대하며 무력감에 빠진다. 이처럼 무력감은 우리를 암담한 처지로 쉽게 몰아넣는 생활의 주범이다.

요새의 형편들이 우리를 특별히 더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자신이 당장 그토록 나쁜 형편에 처하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스스로 주관적인 무력감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 안 빠져도 될 무력감에 빠져 그것의 손쉬운 희생자가 되고 만다.

이에 대한 성경의 답은 무엇일까? 잠언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나의 마음을 무력감으로부터 잘 지켜내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하다는 뜻일 게다. 무력감의 다른 표현은 ‘염려’일진대, 염려의 90퍼센트 이상이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나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것이라는 통계가 진실이라면, 무력감이나 염려의 시위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일은 순전히 내 자신의 몫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도 큰 데모대를 몰고 시위하며 찾아드는 무력감, 그것의 희생자가 내 자신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포장된 게 그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더 그렇다. 내 ‘마음 지킴이’는 남이 아니다. 내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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